토론토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분명 처음 와보는 도시인데, 이상하게도 나는 계속 일본을 떠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유를 몰랐다.
도시는 멋졌다. 높은 빌딩과 오래된 건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고, 사람들은 여유롭게 거리를 걸었다. 사진으로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다고 생각할 만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멋진 도시인데도 어딘가 낯설고, 설명하기 어려운 어색함이 계속 따라다녔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두 시간쯤 걸은 뒤였다.
멀리서 본 도시와 가까이서 본 도시는 달랐다

나는 일본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일본에서는 가게 문을 열기 전 직원이 창문을 닦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알아보든 말든 묵묵히 닦는다.
대학교 화장실도 매일 관리되고, 거리 곳곳에도 꾸준히 사람의 손이 간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는 그런 모습을 보며 ‘정말 꼼꼼한 나라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그 풍경은 더 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새 내 안에서 그것은 하나의 기준이 되어 있었다.
그것도 단순한 기준이 아니라, 당연한 기준으로.
토론토 시내를 걷다가 잠시 쉬려고 카페를 찾았다. 건물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카페 창문에는 비가 온 뒤 한동안 닦지 않은 듯한 얼룩이 남아 있었다. 스티커를 떼어낸 자국도 그대로였다.
일본이었다면 쉽게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그 순간, 계속 느껴졌던 어색함의 이유를 알았다.
나는 토론토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일본과 비교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그 얼룩을 신경 쓰지 않았다

더 흥미로웠던 건 그다음이었다.
그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들 중 아무도 창문의 얼룩을 신경 쓰지 않았다.
불평하는 사람도 없었고, 찝찝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저 자연스럽게 웃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커피를 들고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돈이 없어서도, 기술이 없어서도 아닐 텐데 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걸까.
그러다 문득 질문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저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을까가 아니라, 나는 왜 이렇게까지 신경 쓰고 있을까.
그리고 그 질문은 곧 더 불편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혹시 내가 지금까지 ‘좋다’고 느껴온 것들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내가 오래 살아온 환경에서 익숙해진 기준이었던 건 아닐까?
일본의 기준이 어느새 내 정답이 되어 있었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글은 일본이 토론토보다 더 깨끗하다거나, 토론토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도시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일본은 깔끔함에 큰 가치를 두는 사회다.
그래서 좋은 가게일수록, 좋은 공간일수록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 안에서 10년을 살며 그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일본의 기준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내 기준이 되었고, 언젠가부터는 정답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기준과 다른 모습을 보면 단순히 ‘다르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토론토의 창문을 보기 전까지는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익숙함은 언제부터 정답이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비슷하다.
어릴 때부터 살아온 문화, 부모님이 당연하게 여겼던 것, 학교와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익힌 것들.
우리는 그것들을 너무 오래 봐서 어느 순간부터 ‘익숙한 것’과 ‘옳은 것’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나와 다른 기준을 만나면 쉽게 생각한다.
‘왜 저렇게 하지?’
하지만 조금만 거리를 두고 보면 그 질문은 이렇게 바뀔 수도 있다.
‘아, 저 사람들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나와 다르구나.’
토론토는 청소할 기술이나 돈이 없는 도시가 아니다.
그저 창문의 얼룩을 일본만큼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뿐이다.
일본은 깔끔함에 더 많은 가치를 두고, 토론토는 또 다른 곳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을지 모른다.
창문이 깨끗한 것과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는 별개의 일이니까.
어느 쪽이 맞고 틀린 것이 아니다.
애초에 ‘좋음’을 판단하는 출발점이 달랐던 것이다.
여행이 보여준 것은 새로운 도시가 아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여행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새로운 도시를 보러 갔다면, 이제는 그곳에서 내 안에 숨어 있던 기준을 발견하는 기분이 든다.
다른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의 방식을 모두 좋아하거나, 무조건 동의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내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이 정말 당연한지 한 번쯤 다시 바라보는 일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토론토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창문의 얼룩이 아니었다.
그 얼룩을 보자마자 무언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던 내 기준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의 기준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건 틀렸어’라고 생각하는 것과 ‘저건 나와 다르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 차이 하나만으로도 세상과 부딪히는 일은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어쩌면 어떤 도시는 창문보다 다른 것을 닦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건물 안에서의 관계를.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대부분은 옳아서가 아니라, 그저 오래 봐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토론토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은 토론토가 아니라, 토론토를 바라보던 내 기준이었다.
그리고 여행은 가끔 새로운 풍경보다 먼저,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를 보여준다.

글 : My Language Trip
그림 : My Language Trip (AI-assis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