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었다
해외 문화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었다

일본에서 보낸 10년, 정답 대신 다양한 시선을 배우다

My Language Trip ·

일본에서 10년을 보내며 확신이 줄어드는 모습을 표현한 이미지

일본에서 10년을 살고 나니,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는 오히려 모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정돈된 거리, 조용한 지하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사람들. 원래 조용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었던 내게 일본의 방식은 꽤 잘 맞았다.

그래서 한동안은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살면 서로 편하지 않을까?’

그때의 나는 내가 편하다고 느끼는 삶의 방식이, 누구에게나 좋은 방식일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일본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알게 됐다.

세상에는 모두에게 통하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는 것을.

외국에서의 삶도 결국 평범해진다

외국에서의 일상이 평범해지는 모습

처음 일본에 온 건 거창한 계획 때문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이 있었다. 여행으로 몇 번 와본 일본이 익숙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유학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아침마다 깨끗하게 정돈된 거리도 신기했고, 사람이 많은 전철 안이 조용한 것도 신기했다. 가게 직원이 손님에게 몇 번씩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나, 작은 일에도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하는 문화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신기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낯설었던 풍경은 어느새 익숙한 출근길이 됐고, 외국에서 산다는 특별함도 대학 생활과 직장 생활 속에 묻혔다.

외국 생활도 결국 생활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퇴근하면 장을 보고,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을 한다. 처음에는 사진을 찍던 풍경도 나중에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게 된다.

그렇게 일본이 더 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무렵부터, 오히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편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답답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는 모습을 표현한 이미지

나는 일본의 조용함이 편했다.

굳이 앞에 나서지 않아도 되고, 주변 분위기를 살피는 것이 배려로 받아들여지는 문화도 내 성격과 잘 맞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일본의 조용함이 편안함이 아니라 거리감으로 느껴졌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배려는, 때로는 속마음을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되기도 했다.

규칙을 잘 따르면 편한 사회이지만, 처음 온 사람에게는 설명되지 않은 규칙이 너무 많은 사회일 수도 있었다.

반대로 내가 조금 부담스럽다고 느꼈던 적극적인 표현이나 솔직한 대화가, 누군가에게는 훨씬 편하고 건강한 방식일 수 있었다.

그때부터 문화의 차이를 바라보는 내 질문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어느 방식이 더 좋은지를 먼저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묻게 됐다.

‘이 문화는 어떤 사람에게 편할까?’

‘어떤 환경에서 이런 방식이 만들어졌을까?’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 잘못된 것일까?’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유를 이해하려 하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사람의 기준을 배우는 일이었다

언어를 배우며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는 모습

일본에 살면서 일본어를 배웠고, 이후 중국어와 영어도 공부했다.

처음에는 외국어를 단순한 소통 도구라고 생각했다. 시험에 합격하거나, 외국인과 대화하거나, 다른 나라의 글을 읽기 위해 필요한 기술에 가까웠다.

하지만 공부를 계속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언어에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기준이 들어 있었다.

같은 감사 인사라도 어느 순간에, 얼마나 자주 말하는지가 달랐다. 같은 거절이라도 어떤 문화에서는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예의였고, 다른 문화에서는 상대가 알아차릴 수 있도록 부드럽게 돌려 말하는 것이 배려였다.

단어의 뜻을 외우는 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있었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말을 익히는 일이기도 했지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기준 밖으로 잠시 나가보는 일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국제정세와 외국 문화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나라에 따라 전혀 다른 설명이 나왔다. 사람들은 같은 사실을 보고도 각자의 역사와 환경,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였다.

누군가가 틀려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일 때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정답 대신 시선을 쓰려 한다

정답 대신 여러 시선을 바라보려는 모습

요즘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기회가 많아졌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천천히 들여다볼 기회는 오히려 줄어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는 빠르게 동의하거나 반대한다.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듣기 전에 어느 편인지부터 판단한다.

나 역시 그럴 때가 많다.

일본에서 오래 살았다고 해서 일본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외국어를 공부했다고 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모두 아는 것도 아니다.

같은 일본에서 같은 시간을 살아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일본을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 정답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통해 이런 시각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해보고 싶다.

독자가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글을 읽기 전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한 번 더 상상해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앞으로 세 가지 이야기를 기록하려 한다

앞으로 기록해나갈 세 가지 이야기를 떠올리는 모습

앞으로 이곳에는 크게 세 가지 이야기를 써 내려가려 한다.

외국어를 공부하며 직접 부딪치고 실패했던 이야기.

외국에서 생활하며 발견한 문화와 사람들의 차이.

그리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국제관계를 평범한 사람의 시선으로 이해해보는 이야기다.

이미 세상에는 훌륭한 지식과 정보가 넘쳐난다.

하지만 같은 지식을 접하더라도, 각자가 어떤 경험을 통해 그것을 이해했는지는 모두 다르다.

그래서 개인의 경험을 기록하는 글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내가 지나온 길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간접 경험이 될 수 있고, 내가 오랫동안 고민했던 질문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일본에서 보낸 10년이 내게 알려준 것은 일본이 정답이라는 사실도, 한국이 틀렸다는 사실도 아니었다.

내게 편한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고, 내가 이상하다고 느낀 방식이 다른 사람에게는 가장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답이 있다.

그리고 어쩌면 삶이란 그중 하나의 정답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나에게 맞는 길을 천천히 찾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들을 이곳에 하나씩 기록해보려 한다.

글 : My Language Trip
그림 : My Language Trip (AI-assisted)